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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 임산부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떤 약은 먹어도 되는지 먹어선 안되는지이다. 아는 지인이 물어볼 때도 있고 블로그 댓글로 물어볼 때가 있어 검색으로 편하게 볼 수 있도록 글을 써볼까 한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산모(임산부)가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약에 대해 알고 있다. 다만 애매한 약물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의사들도 세세하게 알기 어렵다. 그래서 여러 자료들을 참고한다. 오늘은 주로 참고하는 자료를 토대로 글을 써볼까 한다. 새로 나온 약이 아닌 이상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기에 오늘 활용하는 자료들이 10년이 넘었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지는 않다.
1. 식품의약품 안전처에서 2010년 발행한 '임부에 대한 의약품 적정사용 정보집 -전문가용-
2. 의사협회지에 실렸던 2007년 의학 강좌 '흔한 질환에 대한 임신 중 사용 가능한 약물' 부분 활용
1. 임산부의 정의
임신부 : 임부와 동등한 표현으로 임신한 여성을 일컫는다.
산부 : 분만 과정을 거쳐 신생아를 출산한 어머니. 즉 임신이 종료된 상태다.
임산부 : 임부+산부를 합친 단어로 임신부와 혼동해서 대부분 사용한다. 따라서 임신한 여성만을 따로 지칭하기 위해서는 '임산부'보다는 '임부'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2. 국내외 태아 위험도 분류체계 이용
(1) 미국 FDA 분류
79년에 만들어진 분류로 총 5개의 등급으로 나눈다. 완벽하지 않으나 한국에서 주로 보는 분류체계이다.
A : 태아에 대한 통제된 연구결과 위험성이 없다.
B1 : 동물에 대한 연구에서 독성이 있으나 임부에 대한 연구에서 태아의 위험성이 증가하지 않는다.
B2 : 임부에 대한 연구 자료는 없지만 동물에 대한 연구 결과 태자에 대한 위험성이 거의 없다 (전혀 없지 않다)
C1 : 사람과 동물에서 적절한 연구자료가 없다.
C2 : 사람에 대한 연구 자료는 없으나, 동물에 대한 연구 결과 위험성이 나타났다.
D : 사람에 대한 연구, 임상시험에서 위험성이 나타났다.
X : 사람이나 동물에 대한 연구에서 태아에 대한 위험성이 나타났다.
(2) 호주 의약품 안전청(TGA) 산하 약물 평가 위원회 (ADEC)에서 발행한 임신 중 의약품 처방 지침
미국 FDA 분류와 비슷하나 B 분류를 세분화하여 B1, B2, B3로 나눈다. B의 분류의 경우 임상에서 투여한 경험이 적거나 태아에 대해 위험성을 나타내는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의약품으로 동물실험 결과에 따라 세분화한다.
(3) 일본 토라노몬 국립병원 '실천 임신과 약물'
미국 및 호주 태아 위험도 분류와 다른 점은 일본 분류의 경우 순수하게 약물의 태아 위험도에만 주목하여 점수화했다는 점이다. 식품 의약품 안전처 정보집에 따르면 치료의 목적으로 약물을 투여할 때의 활용보다는 우발적으로 투여시 태아 위험도에 대해 활용 측면이 크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마 임산부(임신중)가 먹어도 되는 약? 이라는 질문에 가장 가깝게 대답해 줄 수 있는 분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약물은 시기마다 위험성이 다르므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시기(Table 6-1)
약물 성분에 따른 기형 위험도(Table 6-2)를 곱했을 때 나오는 값을 기형 위험도 종합점수로 한다.
(4) PLLR (Pregnancy and Lactation Labeling Rule)
다만 기존 태아 위험도의 경우 갱신되는 연구들을 반영하기 힘들고 오래전에 만들어진 분류이므로 이것에 한계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2015년부터는 PLLR (Pregnancy and Lactation Labeling Rule)이라는 새로운 분류 체계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같은 약에 대해 호주와 미국의 등급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FDA 분류 X로 되어 있는 에스트라디올 (경구 복합 피임약 계열)이 호주 분류로는 B1 또는 B3으로 분류된다.
이런 약들이 꽤 많기 때문에 어느 한 분류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복합적으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래서 의사는 임상적으로 사용해야 할 치료적 이득이 위험을 상회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판단하여 사용하게 된다.
3. 실수로 분류 X약을 먹었을 때?
(1) "임신할 줄 몰랐어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임신하지 않기 위해 피임약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임신 6주였다던가. 임신할 줄 모르고 회식 중 과음을 했다던가. 결론만 말하자면 아무 상관없다. 배아 또는 초기 태아의 경우 발생 이전 단계이기 때문에 약물로 인해 치명적인 기형이 발생한다면 안타깝지만 그전에 유산된다. 다만 대부분 알지 못한 상태로 지나가겠지만...
그럼에도 아기집이 보였다면? 또는 심장 뛰는 게 보였다면? 일단 임신을 지속하면서 지켜본다. 오히려 그런 걱정으로 노심초사하면 유산 가능성이 높아지니 임신 중인 걸 알고 난 이후부터는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장기 발생에 이상은 없는지 초음파는 계속 받으면서 지켜봐야 한다.
(2) 탈리도마이드 베이비
독일에서 OTC(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었던 입덧 방지제이자 수면제인 탈리도마이드. 이 약을 먹은 산모들의 아기 1만 명에서 기형이 나타났다. 기형 유발물질의 대표적인 예로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았던 약이다. 그럼 현재 이런 약물이 어떤 게 있을까?
FG Cunningham Williams Obstetrics, 23rd Ed (산부인과의 정석)를 참고하면 선천성 이상아의 65프로는 원인 불명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에게 유전학적 결함이 있는 경우는 33% 미만이며, 선천성 이상아 중 약물을 포함한 기형유발물질로 인한 경우는 1% 미만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즉, 선천성 이상아 중 기형유발물질로 인한 경우는 굉장히 적다.
(3) 정말 조심해야 할 기형유발물질
대부분의 약은 처방이 필요한 약물이므로 임산부(임신중) 우연히 잘못 먹을 가능성이 적다.
1. 혈압약
ACE inhibitor (~pril(프릴)로 끝나는 약) 또는 Angiotension 2 R antagonist (ARB) (~tan(탄)으로 끝나는 발사르탄, 올메탄, 올메살탄, 텔미살탄 등)의 경우 이전에 복용 중인 임부의 경우 조심해야 한다. 이 또한 FDA 분류상 C 또는 D로 분류되어 있으므로 정말 필요한 경우는 사용할 수 있으나 혈압 강하만의 목적이라면 다른 대체재를 사용해야 한다.
2. 고지혈증(이상지질혈증) 치료약
Statin (스타틴 계열 약물)도 비슷한 이유로 조심해야 한다. 기본적인 약이라 해서 위험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FDA 기준 분류 X, 호주 기준 분류 C로 되어 있다.
3. 비타민 A
많은 임부들이 알고 있는 임산부 금기 약물 (미국 FDA 기준 분류 X, 호주 기준 D, 일본 기준 10000IU 이상시 2점)(미국 식품영양위의 기준에 따르면 비타민 A의 하루 권장량은 10000IU이다)인데 문제는 멀티비타민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한 가지 예로 얼라이브 멀티비타민 속 비타민A의 경우 대략 7500IU 정도 들어 있다.
임부를 위한 멀티비타민을 먹는 것이 좋고 모르겠다면 먹지 않아도 좋다. 정상 식이가 가능한 임부라면 과도한 비타민은 불필요하다. 다음 글에서 쓰겠지만 비타민 A뿐만 아니라 임부들이 많이 먹는 비타민D도 일부 용량에서는 FDA 분류 D로 분류된다.
4. 진통제
대부분의 약들이 태아 중요 발생기인 16주 이전에 심각한 기형을 유발하지만 16주 이후 또는 28주 이후의 경우는 심각한 기형이 드물다. 다만, 임신 후기에 대표적으로 조심해야 할 아주 흔한 약물이 있는데 바로 NSAIDs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이다.
NSAIDs(이부프로펜, 디클로페낙, 인도메타신, 멜록시캄, 셀레콕시브 등등)는 감기나 근육통에서 쉽게 처방받을 수 있고 또 OTC로 쉽게 구입 가능한데 이 약을 임신 중기나 후기에 먹을 경우 꽤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태아는 양수 속에 있으면서 숨 쉴 필요가 없기 때문에 폐로부터 나오는 신선한 혈액이 필요 없다. 그 역할은 엄마의 태반 혈관이 대신하고 동맥관을 통해 산소가 풍부한 피는 대동맥으로 들어오게 된다. Patent Ductus Arteriosus (PDA; 동맥관)이 출생 이후에도 열려 있을 경우에는 Aorta(대동맥)의 강력한 혈압이 반대로 Left Pulmonary Artery (좌측 폐동맥)으로 향하게 되어 Lt-Rt Shunt (좌우 단락; 왼쪽 심장의 피가 오른쪽 심장으로 흘러감)이 된다.
다만 태아가 출생 후 호흡을 어푸어푸 시작하면 폐가 펴지면서 폐압이 감소하고 따라서 자연스레 1일 이내에 이 동맥관은 닫힌다. 마치 우회 도로를 폐쇄하는 것과 같다. 이 동맥관을 닫히게 하는 성분이 바로 NSAIDs 안에 있다. 아직 폐호흡이 불가능한 태아에서 약리적으로는 NSAIDs가 조기에 폐쇄 시킬 수 있지만..
임상적으로는 NSAIDs 몇 알 먹었다고 또는 케토톱 파스를 붙였다고 해서 바로 동맥관이 폐쇄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별일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실수로 먹었다고 해서 큰 걱정을 하지 말고 초음파 검사를 해보는 게 좋다.
(4) 결론. 기형유발 약물을 먹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임신 초기에 약물을 먹은 경우는 특히 아이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줬을 거라는 두려움으로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선천성 이상을 확인하지도 않고 임신 종결을 생각하는 임부도 있다. 반대로 임부가 의약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지 못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약물을 투여한 결과 해를 끼치기도 한다. 따라서 그러한 영향을 의사가 적절하게 상담해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내에는 마더세이프 상담센터(1588-7309)를 통해 상담을 할 수 있다. 마더세이프의 경우 약물뿐만 아니라 임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반적인 정보도 제공한다.
가장 대표적인 미국 FDA 분류를 예로 설명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약물은 B 또는 C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정말 사용할 수 없는 약물일까? 아니다.
임산부에서 안전하다고 알려진 타이레놀 역시 분류 B이며 많은 치료 목적으로의 분류 C 약물들을 사용하고 있다. 분류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약물도 있다. 흔히 병원에서 맞는 생리 식염수나 포도당 역시 분류 C 이다. 임산부를 대상으로 할 수 없는 연구의 특성상 나타나는 분류일 뿐이다. 따라서 의사는 최신 지견을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객관적인 임상 증거를 근거로 안전성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실제로 기형 유발 약물은 30가지 미만으로 규명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비교적 안전하게 임부에게 투여 가능하다.
따라서 분류 B, C의 약물을 우연히 먹게 되었다고 해서 당장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분류 X 약물을 먹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임신 초기에 복용하였다고 하면 바로 산부인과 전문의를 찾아 상담받는 것이 좋다. 초기의 경우 발생학적 기형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만큼 전문의와 상담 후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서두에서 말했듯이 기형유발물질로 인한 선천성 기형아 비율은 1~3프로로 굉장히 적다. 또한 분류 X의 약물 1~2알 먹었다고 해서 당상 심각한 기형을 일으킨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므로 실수로 복용했다고 해서 죄책감은 가지지 않아도 좋다. 반대로, 의사 역시 질병이 있는 임부에게 약물을 사용할 때 위험성이 있다면 약물을 쓸 때 이득과 위험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사용에 있어서 이득이 크다고 생각하기에 사용하겠지만 임부가 막연히 불안해하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부적인 임산부(임신중)에 위험한 약물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다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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