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왜 투수는 '소모품'이라 불리는가: 부상의 메커니즘
2. 숫자로 부상을 예측하려는 시도: 기존 부상 예측 지표들의 한계
3. 부상의 비극, 그 전조를 찾아서: 5인 투수 데이터 심층 분석
"가장 믿었던 에이스의 팔꿈치에서 날아온 비보"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팬이자 스포츠 의학을 공부하는 의사로서 안타까우면서 또한 관심을 가지는 분야입니다.
지난번에 썼던 새로운 세이버메트릭스 지표 PICI (피시)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투수가 한순간의 부상으로 마운드를 떠나는 모습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팀과 리그 전체의 손실로 이어집니다. 의사로서 필자는 늘 생각해왔습니다. 과연 투수의 부상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불운'일 뿐일까요? 혹시 부상이라는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 선수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위험 신호들이 누적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저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믿습니다. 부상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피로와 미세한 손상이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매우 대담한 도전을 하고자 합니다. 투수의 부상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정량화하는 새로운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상을 100% 예측하는 것은 현대 의학과 데이터 과학으로도 불가능한 영역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위험 신호'들을 종합적으로 포착하여 경고등을 켤 수 있다면, 선수 관리와 부상 예방에 있어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투수의 팔이 왜 그토록 혹독한 위험에 노출되는지 그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파헤쳐 볼 것입니다. 그 다음, 기존에 부상 예측을 위해 사용되었던 지표들의 명확한 한계를 짚어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의 핵심, 바로 안타깝게 부상을 당한 KBO 리그 정상급 투수 5명의 과거 3~4년간의 기록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며 부상의 전조가 되었던 공통적인 패턴을 찾아낼 것입니다.
이 분석을 통해 우리는 기존의 단편적인 지표들을 뛰어넘는, 여러 위험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새로운 통합 지표, '투수 부상 경고 지수(Pitcher Injury Warning Score, 이하 PIWS, 피슈)'를 제안하고 그 구체적인 설계 방법과 활용 방안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다면, 여러분은 더 이상 투수의 부상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지 않고, 데이터 속에 숨겨진 경고를 읽어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될 것입니다.
1. 왜 투수는 '소모품'이라 불리는가: 부상의 메커니즘
투구라는 행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인체에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동작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투수의 팔은 공을 던지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야구의 투구 동작, 특히 오버핸드 스로(overhand throw)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상정된 적 없는, 지극히 폭발적이고 반복적인 움직임의 조합입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고무줄을 한번 상상해 보시죠. 고무줄을 최대한 늘였다가 놓는 행위를 수만 번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는 팽팽함을 유지하겠지만, 결국 탄성을 잃고 미세한 균열이 생기다가 어느 순간 '툭'하고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투수의 어깨와 팔꿈치 인대는 바로 이 고무줄과 같은 운명에 놓여있습니다.
투구 동작은 발끝에서 시작해 손끝에서 끝나는 '운동 사슬(Kinetic Chain)'의 정점입니다.
투수는 지면을 박차는 힘을 하체와 몸통의 회전으로 증폭시키고, 이 에너지를 어깨와 팔꿈치를 거쳐 손끝으로 전달해 공을 뿌립니다. 이 과정에서 어깨는 1초에 약 7,000도 이상 회전하며 엄청난 속도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인체에서 가장 빠른 움직임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공이 손을 떠난 후에는 가속된 팔을 감속시키고 제어하기 위해 어깨와 팔꿈치 주변의 근육과 인대가 상상을 초월하는 부담을 견뎌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팔꿈치 안쪽에 위치한 내측 측부 인대(Ulnar Collateral Ligament, UCL)는 팔이 뒤로 젖혀지는 '레이트 코킹(Late Cocking)' 단계에서 엄청난 외반력(valgus force), 즉 바깥쪽으로 꺾이는 힘을 받게 됩니다. 토미 존 수술(Tommy John Surgery)이 바로 이 UCL이 손상되었을 때 시행하는 인대 재건술이라는 사실은, 이 부위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아니, 그럼 그냥 살살 던지면 되는 거 아니야? 왜 굳이 부상당할 때까지 세게 던지는 건데?
얼핏 생각하면 타당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야구에서 투수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투구'입니다. 메이저리그(MLB)의 속구 평균 구속은 2008년 약 146.6km/h에서 2023년 151.6km/h까지 치솟았으며, 이는 더 빠른 공을 던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경쟁 환경을 보여줍니다. 구속과 구위의 증가는 곧 부상 위험의 증가와 직결됩니다. 더 강하게 던지려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투구 메커니즘에 과부하를 유발하고, 이는 근육과 인대의 미세 손상(microtrauma)을 축적시킵니다.
결정적으로, 대부분의 심각한 부상은 단 한 번의 투구로 발생하는 급성 손상이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만성적인 스트레스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매 투구마다 발생하는 미세 손상이 충분한 휴식과 회복을 통해 치유되지 못하고 계속 쌓이다가, 결국 인대가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버리는 순간 파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피로(fatigue)는 부상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며, 한 연구에 따르면 피로를 느낀 상태에서 계속 투구하는 것은 부상 위험을 무려 36배나 높인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투수의 부상을 예측하기 위해 과거의 누적된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2. 숫자로 부상을 예측하려는 시도: 기존 부상 예측 지표들의 한계
선수의 피로도와 부상 위험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가장 원시적이고 직관적인 지표는 단연 '투구 이닝(Innings Pitched, IP)'과 '투구 수(Pitch Count)'일 것입니다. 많이 던졌으니 당연히 피로할 것이라는 논리이며, 실제로 MLB를 포함한 모든 리그에서는 투수의 투구 수를 제한하고 의무 휴식일을 부여하는 규정을 통해 선수를 보호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많이 던졌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똑같이 100구를 던져도 어떤 투수는 거뜬한 반면, 어떤 투수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조금 더 발전된 개념이 등장했는데, 바로 '버두치 효과(The Verducci Effect)'입니다. 이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톰 버두치가 제안한 가설로, 만 25세 이하의 젊은 투수가 전년 대비 30이닝 이상 더 던졌을 경우, 다음 해에 부상이나 심각한 부진을 겪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이 가설은 KBO리그에서도 64%의 높은 적중률을 보이는 등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으며, 갑작스러운 '작업량(Workload)'의 증가'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는 중요한 지표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버두치 효과 역시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많은 베테랑 선수에게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원 투수와 선발 투수의 이닝 증가를 동일하게 봐야 할지 등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또한 일부 연구에서는 버두치 효과와 부상 발생률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PITCHf/x나 트랙맨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 투구의 '구속(Velocity)', '회전수(Spin Rate)', '릴리스 포인트(Release Point)' 등 훨씬 더 정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체역학적(biomechanical) 데이터의 변화는 부상의 전조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즌 중 특별한 이유 없이 구속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거나 릴리스 포인트가 흔들린다면, 이는 근육의 피로 누적이나 보상 동작(compensation)으로 인한 메커니즘의 붕괴를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첨단 데이터조차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최근 연구들은 구속 자체가 부상을 예측하는 데는 형편없는 지표이며, TJS(토미 존 수술) 위험의 단 5%만을 설명할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제구력 상실(Loss of command)'이 더 중요한 초기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투수가 피로해지면 신경근 협응 능력이 떨어져 투구 메커니즘이 미세하게 변하고, 이는 제구력 난조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평소 같으면 스트라이크 존에 꽂아 넣던 공이 계속해서 빠져나간다면, 이는 팔이 보내는 위험 신호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기존의 지표들은 저마다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지만, 부상이라는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단편적이라는 명백한 한계를 가집니다. 작업량, 구위의 변화, 제구력의 붕괴 등 여러 위험 요소들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서로 얽혀 유기적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이 모든 파편화된 정보들을 하나로 엮어 종합적인 위험도를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잣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로 이 필요성이 우리가 'PIWS' 피슈 라는 새로운 지표를 제안하게 된 출발점입니다.
3. 부상의 비극, 그 전조를 찾아서: 5인 투수 데이터 심층 분석
이제 이 글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최근 3년간 부상으로 쓰러진 리그 탑급 5명의 투수(이의리, 안우진, 홍건희, 곽빈, 반즈)의 과거 기록을 통해 부상의 전조를 포착하는 탐정 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데이터를 통해 앞서 제기한 가설들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지표로 통합할 실마리를 찾아낼 것입니다.
가설 1: 과부하는 배신하지 않는다 - 이닝 증가의 저주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지표는 단연 '작업량(Workload)', 특히 전년 대비 '이닝의 급격한 증가'입니다. 이는 앞서 설명한 '버두치 효과'와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으로, 우리 분석 대상에서도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안우진 선수와 곽빈 선수의 사례입니다.
안우진 선수의 2022년 기록은 경이로움과 동시에 깊은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그는 해당 시즌 무려 196이닝을 소화했는데, 이는 2021년의 107.2이닝에 비해 88.1이닝이나 폭증한 수치입니다. 약 82%의 이닝 증가는 젊고 강력한 투수의 어깨라 할지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2023년에는 150.2이닝으로 조절했지만, 2022년에 축적된 데미지는 이미 그의 팔꿈치에 시한폭탄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2023년의 부상은 과부하가 발현된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곽빈 선수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그는 2023년 127.1이닝을 던진 후, 2024년에는 167.2이닝으로 투구량을 크게 늘렸습니다. 40.1이닝의 증가는 버두치 효과의 기준인 30이닝을 훌쩍 뛰어넘는 위험한 수치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닝이 증가한 2024년에 그의 평균자책점(ERA)과 이닝당 출루 허용률(WHIP) 같은 효율성 지표가 전년 대비 악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늘어난 작업량을 감당하며 효율적인 투구를 하지 못했고, 더 많은 힘을 쥐어짜 내면서 투구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는 곧 부상 위험의 급증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선수명 | 연도 | 이닝(IP) | 전년 대비 이닝 변화(ΔIP) | 위험도 평가 |
안우진 | 2021 | 107.2 | - | - |
2022 | 196 | 88.1 | 매우 높음 | |
2023 | 150.2 | -45.8 | 관리 단계 | |
곽빈 | 2023 | 127.1 | - | - |
2024 | 167.2 | 40.1 | 매우 높음 |
가설 2: 제구의 흔들림은 몸의 비명이다 - BB/9 급증의 경고
만약 투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는 단순한 '컨디션 난조'가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심각한 경고 신호일 수 있습니다. 피로가 누적되면 투구 메커니즘의 일관성이 무너지고, 이는 제구력의 급격한 저하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의리 선수와 홍건희 선수의 데이터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의리 선수는 2023년, 9이닝당 볼넷(BB/9) 수치가 6.4개로 치솟았습니다. 이는 2022년의 4.3개에 비해 매우 큰 폭으로 증가한 것입니다. 삼진을 많이 잡는(SO/9 10.7) 파워 피처임에도 불구하고 제구가 흔들렸다는 것은, 자신의 힘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투구 메커니즘에 문제가 생겼거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신체 부위가 보상 동작을 하면서 부상 위험이 가중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베테랑 구원 투수인 홍건희 선수의 사례는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그는 꾸준히 3점대 중반의 안정적인 BB/9를 기록하던 투수였으나, 2024년 이 수치가 5.0으로 폭등했습니다. 동시에 9이닝당 삼진(SO/9)은 전년도 9.0에서 6.8로 급감했습니다. 삼진/볼넷 비율(SO/W)이 2023년 2.58에서 2024년 1.36으로 반 토막 났다는 것은, 그의 투구 '효율성'이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스트라이크를 던질 능력(Command)과 헛스윙을 유도할 능력(Stuff)을 동시에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는 부상 전조 증상의 가장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수명 | 연도 | BB/9 (9이닝당 볼넷) | SO/9 (9이닝당 삼진) | SO/W (삼진/볼넷) | 위험도 평가 |
이의리 | 2022 | 4.3 | 9.4 | 2.18 | 보통 |
2023 | 6.4 | 10.7 | 1.68 | 높음 | |
홍건희 | 2023 | 3.5 | 9 | 2.58 | 보통 |
2024 | 5 | 6.8 | 1.36 | 매우 높음 |
가설 3: 투구 스타일의 급격한 변화 - 양날의 검
때로는 긍정적으로 보이는 지표의 변화조차 부상의 전조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투수가 자신의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나 갑작스럽게 다른 유형의 투구를 시도할 때 그렇습니다. 이는 더 나은 성적을 위한 의도적인 변화일 수도 있지만, 신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변화는 부상이라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반즈 선수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반즈 선수는 2024년, 9이닝당 삼진(SO/9) 수치를 10.2개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는 그의 이전 시즌 기록인 7.8개를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발전입니다. 얼핏 보면 더 강력한 구위를 갖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주목해야 할 지표는 9이닝당 홈런(HR/9)입니다. 이 수치 역시 2023년 0.3개에서 2024년 1.1개로 3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이 두 지표의 동반 상승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반즈 선수가 2024년 들어 제구나 완급 조절보다는 오직 힘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소위 '기어 업(gear up)'하는 투구에 집중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전략은 삼진을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제구가 되지 않은 힘 있는 공이 장타로 연결될 확률 또한 높였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매 투구를 전력으로 던지는 방식은 그의 팔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했고, 결국 부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닦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처럼 5명의 선수 데이터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부상의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안우진과 곽빈은 '과부하', 이의리와 홍건희는 '제구력 붕괴', 그리고 반즈는 '위험한 스타일 변화'라는 명확한 전조를 보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이 각기 다른 경고등을 하나의 종합적인 계기판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4. 새로운 제안: 부상 예측을 위한 통합 지표 'PIWS, 피슈'
기존 지표들은 파편적인 정보만을 제공할 뿐, 여러 위험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명백한 한계가 있습니다. 과부하, 제구력 상실, 투구 내용의 변화는 서로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있는 부상의 전조들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새로운 통합 지표, '투수 부상 경고 지수(Pitcher Injury Warning Score, PIWS)'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PIWS의 기본 철학
PIWS의 핵심 철학은 매우 명확합니다. 이 지표는 투수의 '기량'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부상 위험도'를 측정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즉, PIWS 점수가 높다는 것이 '못하는 투수'라는 의미가 아니라 '부상당할 위험이 높은 투수'라는 의미입니다. PIWS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정량화합니다.
첫째, 투수의 신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작업량'을 측정합니다.
둘째, 선수의 평소 모습에서 벗어나는 '위험한 변화'를 감지합니다. 이 변화는 기량 저하일 수도 있고, 반대로 갑작스러운 기량의 폭발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변화의 폭' 그 자체입니다.
PIWS의 구성 요소 및 계산 공식
PIWS는 앞선 사례 분석에서 도출한 세 가지 핵심 위험 요소를 바탕으로 구성됩니다. 바로 작업량 부하 점수(Workload Stress Score, WSS), 제구력 저하 점수(Command Decline Score, CDS), 그리고 투구 효율 변화 점수(Effectiveness Change Score, ECS)입니다. 이제 각 점수의 구체적인 계산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1. 작업량 부하 점수 (Workload Stress Score, WSS)
WSS는 투수의 어깨와 팔꿈치에 가해지는 물리적인 총량을 평가하는 지표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고려됩니다. 하나는 한 시즌에 소화한 '절대적인 이닝의 양'이고, 다른 하나는 전년 대비 '이닝의 증가량'입니다. 특히 젊은 투수에게 갑작스러운 이닝 증가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우리는 특정 기준점을 넘어서는 이닝과 이닝 증가량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점수를 산출합니다.
계산 방식:
1. 기본 점수: 해당 시즌 소화 이닝(IP)을 10으로 나눕니다.
2. 과부하 가산점:
- 선발 투수가 180 이닝을 초과했을 경우, 초과분 1이닝당 0.5점을 추가합니다.
- 구원 투수가 80 이닝을 초과했을 경우, 초과분 1이닝당 1점을 추가합니다.
3. 급증 가산점(버두치 효과):
전년 대비 이닝(ΔIP)이 30 이닝을 초과했을 경우, 10점을 추가합니다.
전년 대비 이닝(ΔIP)이 50 이닝을 초과했을 경우, 10점을 추가로 더 부여합니다 (총 20점).
WSS=(IPcurrent/10)+(과부하 가산점)+(급증 가산점)
2. 제구력 저하 점수 (Command Decline Score, CDS)
CDS는 투수의 제구력이 얼마나 급격하게 나빠졌는지를 측정합니다. 이는 피로 누적과 메커니즘 붕괴의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해당 시즌의 9이닝당 볼넷(BB/9)을 해당 선수의 '과거 2년 평균 BB/9(Baseline BB/9)'와 비교하여 그 변화율을 측정합니다. 자신의 평소 모습보다 얼마나 많은 볼넷을 허용하고 있는지를 통해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것입니다.
계산 방식:
1. BB/9 변화율 계산: 해당 시즌 BB/9를 과거 2년 평균 BB/9로 나눕니다. (BB/9 Ratio = BB/9_current / BB/9_baseline)
2. 점수 변환:
변화율이 1.2 (20% 악화)를 초과하면, 변화율에 10을 곱하여 점수를 부여합니다.
변화율이 1.5 (50% 악화)를 초과하면, 여기서 5점을 추가로 가산합니다.
변화율이 1.2 이하일 경우, 점수는 0점입니다.
3. 투구 효율 변화 점수 (Effectiveness Change Score, ECS)
ECS는 투구의 질적인 측면, 즉 '효율성'의 급격한 변화를 포착하기 위한 지표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상반된 시나리오가 모두 포함됩니다. 하나는 홍건희 선수의 사례처럼 **'효율성이 붕괴'**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반즈 선수의 사례처럼 '위험한 방식으로 효율성이 급증'하는 경우입니다.
계산 방식 (효율성 붕괴):
1. SO/W 변화율 계산: 삼진/볼넷 비율(SO/W)의 변화율을 계산합니다. (SO/W Ratio = SO/W_current / SO/W_baseline)
2. 점수 변환: 변화율이 0.7 (30% 하락) 미만일 경우, (1 - SO/W Ratio)에 30을 곱하여 점수를 부여합니다. 이는 비율이 낮아질수록(1에 가까워질수록) 점수가 급격히 높아지는 구조입니다.
계산 방식 (위험한 효율성 증가):
1. SO/9 및 HR/9 변화율 계산: 9이닝당 삼진(SO/9)과 9이닝당 홈런(HR/9)의 변화율을 각각 계산합니다.
2. 점수 변환: SO/9 변화율이 1.2(20% 증가)를 초과하고 동시에 HR/9 변화율이 1.5(50% 증가)를 초과할 경우, (SO/9 Ratio × 5) + (HR/9 Ratio × 5) 공식을 통해 점수를 부여합니다.
ECS는 두 시나리오 중 더 높은 점수를 택합니다.
PIWS,피슈 최종 공식 및 사례 적용
이제 우리는 세 가지 구성 요소를 합쳐 최종적인 PIWS 점수를 산출합니다. 각 요소의 중요도를 고려하여 가중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수많은 부상 사례들은 물리적인 부담(WSS)과 제구력 붕괴(CDS)가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예측 변수임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요소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위험 단계 | PIWS 점수 구간 | 의미 | 권장 조치 |
안전(Safe) | 8.0점 미만 |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위험 징후가 없음 | 통상적인 선수 관리 |
관심(Concern) | 8.0 ~ 11.9점 | 사소한 위험 징후 감지, 추이 관찰 필요 | 세부 데이터 집중 모니터링 |
주의(Caution) | 12.0 ~ 15.9점 | 명확한 위험 요인 확인, 적극적 관리 필요 | 투구 수 제한, 등판 간격 조절 등 워크로드 관리 |
경고(Warning) | 16.0점 이상 | 부상 위험 임계점 근접, 즉각적 조치 필수 | 의무 휴식, 정밀 검진 및 근본 원인 해결 |
(기준 점수 구간은 앞으로 부상 선수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면 변동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공식을 부상을 당한 5명의 투수들의 부상 직전 시즌 데이터에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선수명 | 기준 연도 | WSS | CDS | ECS | PIWS 최종 점수 | 위험 수준 | 주요 위험 요인 |
안우진 | 2022 | 39.6 | 0 | 0 | 17.8 | 경고 | WSS (압도적 이닝 증가) |
곽빈 | 2024 | 26.7 | 0 | 5.2 | 12.5 | 주의 | WSS (이닝 급증) |
이의리 | 2023 | 13.1 | 14.9 | 0 | 12.6 | 주의 | CDS (제구력 급격 악화) |
홍건희 | 2024 | 5.9 | 19.3 | 14.2 | 12.6 | 주의 | CDS, ECS (총체적 붕괴) |
반즈 | 2024 | 15 | 0 | 16.5 | 8.4 | 관심 | ECS (위험한 스타일 변화) |
(주: 더 정확한 실제 적용 시 더 정교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결과는 놀랍습니다. 부상 직전 시즌, 모든 투수들이 PIWS 시스템 하에서 '관심' 이상의 높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압도적인 이닝 증가를 보인 안우진은 가장 높은 '경고' 수준의 점수를 받았고, 제구력과 효율성이 동시에 붕괴된 홍건희, 제구력이 급격히 흔들린 이의리, 이닝이 급증한 곽빈 역시 모두 '주의' 수준의 위험 신호를 보였습니다. 이는 PIWS가 서로 다른 유형의 위험 신호들을 성공적으로 포착하여 하나의 통합된 경고 지수로 변환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4. PIWS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전망과 한계
PIWS는 단순히 흥미로운 통계적 유희에 그치지 않고, 선수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단은 PIWS 점수를 활용하여 선수들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선수의 PIWS 점수가 시즌 중 '주의' 단계에 진입한다면, 구단은 해당 선수의 등판 간격을 조절하거나, 일시적인 휴식을 부여하거나, 정밀 검진을 통해 잠재적인 부상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감독의 직감이나 선수의 '투혼'에 의존하던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선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선수 개인에게도 PIWS는 자신의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팬들과 언론은 PIWS를 통해 선수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위험을 이해하고, 무분별한 혹사 비판이 아닌 데이터에 근거한 건전한 토론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AI와 머신러닝 기술을 접목한다면, PIWS는 더욱 정교한 부상 예측 모델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개발한 PIWS의 명확한 한계 또한 직시해야 합니다. PIWS는 미래를 예언하는 수정 구슬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에 기반한 '경고 시스템'일 뿐, 결정론적인 예측 도구가 아닙니다. PIWS 점수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부상을 당하는 것도 아니며, 점수가 낮다고 해서 절대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측 모델의 정확도는 60~70%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투수의 부상 예측은 더욱 어려운 과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PIWS 모델은 투구폼의 변화, 구속의 미세한 변화, 개인의 회복 능력 차이, 심리적 요인 등 기록지에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변수들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IWS는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투수의 부상을 '불가항력적인 재해'가 아닌 '관리가능한 위험'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할지라도, 위험의 확률을 줄이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를 지닙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제안한 '투수 부상 경고 지수(PIWS)'는 작업량, 제구력, 투구 효율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통합하여 투수의 부상 위험도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우리는 2025년 부상을 당한 5명의 KBO 투수 사례 분석을 통해, 이들의 부상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으며 데이터 속에 명확한 전조가 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PIWS는 이러한 전조들을 종합적으로 포착하여 구단과 선수에게 시의적절한 경고를 보낼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PIWS는 아직 초기 단계의 가설이며, 더 많은 데이터와 정교한 통계적 검증을 통해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성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수의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와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선수의 '투혼'과 '책임감'에만 기대어 마운드를 지키게 할 것이 아니라, 데이터라는 차가운 언어를 통해 그들의 '몸'이 보내는 뜨거운 신호를 읽어내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때입니다.
의사이자 프로야구 팬으로서 PIWS 피슈 지수를 통해 의학적으로 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건강하게 야구 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의사의 눈으로 본 야구 : PICI(피시), 잠재적 부상을 예측하는 세이버 메트릭스 진단 도구의 제안
목차 기존 지표의 한계: 왜 새로운 진단 도구가 필요한가?PICI의 설계: 더 민감한 바이오마커를 향하여임상적 적용: PICI를 통한 투수 상태의 감별진단결론: 데이터를 통한 부상의 예측과 예방안녕
drstevem.tistory.com
박세웅 투수 2군, 스포츠 의사가 본 부진 원인과 세이버 메트릭스 분석
목차 박세웅 선수의 최근 6년, 그 영광과 균열의 연대기FIP와 PICI의 괴리: 박세웅의 숨겨진 기저질환을 진단하다최종 진단: 문제는 멘탈이 아닌, 치료되지 않은 만성 구위 결함최종 진단서: 만성
drstevem.tistory.com
한화 심우준 비골 골절 부상, 정확히 어떤 부상일까? 의사가 알려드립니다
목차1. 우리 다리의 숨겨진 조력자, 비골의 역할2. 비골 골절, 왜 그리고 어떻게 발생했을까?3. 비골 골절의 진단과 치료 원칙4. 회복과 재활, 그리고 그 이후결론: 심우준 선수의 성공적인 복귀를
drstevem.tistory.com
고기로 먹는 단백질 vs 마시는 프로틴, 뭐가 더 좋을까? 의사가 알려주는 진실
목차1. 단백질, 우리 몸의 필수 벽돌2. 고기 단백질 vs. 프로틴 보충제: 핵심 장단점 비교3. 편리함의 대명사, 프로틴 보충제4. 흡수율 vs. 생체 이용률: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효율!5. 당신의 목표는
drstevem.tistory.com
관절염 줄기세포 주사, 의사가 본 장단점과 주의사항
목차1. 줄기세포란 무엇이고, 어떻게 관절염을 치료할까요?2. 의사가 본 관절염 줄기세포 주사의 장점: 어떤 점이 매력적일까요?3. 의사가 본 관절염 줄기세포 주사의 단점 및 주의사항: 무엇을
drstevem.tistory.com
퇴행성 관절염에 좋은 운동과 피해야 할 운동 총정리
목차1. 퇴행성 관절염 환자에게 운동이 보약인 이유2. 퇴행성 관절염에 좋은 운동: 관절을 살리는 현명한 선택3. 관절 부담은 적게, 효과는 확실하게! 유산소 운동4. 관절을 튼튼하게 지지하는 힘!
drstevem.tistory.com
'의학 > 근골격계 (재활, 정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사가 알려주는 공복 유산소 VS 식후 운동, 효과 차이 있을까? (6) | 2025.06.28 |
---|---|
2025 KBO 부상 위험 보고서: 부상 가능성이 높은 선수 예측 (고영표, 손주영, 오원석, 곽빈, 엄상백, 최원준, 후라도) (5) | 2025.06.17 |
박세웅 투수 2군, 스포츠 의사가 본 부진 원인과 세이버 메트릭스 분석 (4) | 2025.06.12 |
의사의 눈으로 본 야구 : PICI(피시), 잠재적 부상을 예측하는 세이버 메트릭스 진단 도구의 제안 (4) | 2025.06.12 |
퇴행성 관절염에 좋은 운동과 피해야 할 운동 총정리 (7) | 2025.06.02 |